2009년 07월 22일
(정명석 목사님) jms의 진실, 오순절 다락방의 역사처럼 성령충만한 현장
기독교복음선교회 개최 서울천국성령운동
나는 지난 토요일(2009. 7. 18)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천국성령운동'을 보고 왔다. 기독교복음선교회를 이끄는 정명석씨가 감옥에 간다음
교단이 풍비박산이 나고 신도들이 지리멸렬 흩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게 아닌가!
그 실상을 꼭 한 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이웃에 사는 집사님 한 분이 안내를 해 주겠다고 하여 따라 나섰다.
약속 장소에 나가니 천안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정목사님이 5, 6명의 신도들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운전하는 목사님 옆자리에 앉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우리 일행이 천안에서 출발한 시간은 9시 30분이었다.
원래 집회는 오후 3시에 시작하는데 은혜가 넘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최소한 12시에는 입장을 해야한다고 했다.
목사님은 40대 초반의 젊은 분이었고 내가 묻는 사항에 대하여 주저하거나 거리낌 없이 답변해 주었다.
동승한 성도들도 언행이 모두 순수하고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게 느껴졌다. 나를 안내해준 집사님은 뒷자리에 앉아 장충체육관에
들어가면 식사를 못하게 될 것이라며 집에서 준비해온 계란, 감자 등을 까주며 간단히라도 요기를 하시라고 권하였다.
장충체육관 무대전경
도중에 분당에 들려 목사님 사모와 세 아들을 태우고 장충체육관에 도착하니 12시가 다되었다. 밖에는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입장을 하니 벌써
모든 좌석이 꽉차고 통로에 앉은 사람도 많았다. 정목사는 나를 안내하여 진행팀에게 처음으로 오신 교수님이라고 소개하여 1층 특별석으로
자리를 배정 받아 입장 했다. 1층에는 교역자석과 해외에서 온 신도등의 자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채 시작전인데도
진지하게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놀라운 것은 나처럼 머리가 흰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대부분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정목사에게 물어보니 전국의 교회 수는 400여 개에 이르고, 최근에 신도수가 급증한다고 했다. 교역자는 대부분 3, 40대이고 절반이
여자라고 했다. 전후좌우를 다 돌아 보고 스탠드쪽까지 살펴 보았는데 대부분이 대학생이거나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이
젊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도대체 이 저력이 무엇일까! 나는 지인의 소개로 1978년에 정명석씨를 만나본 일이 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동안 묵상을 하노라니 옛날 그를 만났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정 명 석씨
기독교복음선교회 회원들은 정명석씨를 '선생님' 또는 '총재님'으로 호칭한다.
위의 사진은 복음선교회에서 발행한 '알아라 山'이란 책에서 옮겨 놓은 것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키도 나보다 작고, 얼굴도 잘 생긴 편이 아니었다. 목소리도
탁했고 말하는 것도 영활하지 못했다. 한동안 입산하여 토굴 속에서 장기간
금식하며 기도를 했고 폐병으로 고생도 했다고 들은 것 같다.
그런 그가 30여년 동안에, 그것도 사실여부를 떠나 종교지도자로서 가장 치욕적인
이성문제로 여론에 시달리고 해외로 도피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이런 기반을 닦았을까?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과 종교란 불가사의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에서 온 회원가족
내가 앉은 자리 오른쪽에는 중국에서 온 30여 명의 회원들이 있었고, 뒤쪽에는 카나다, 미국,
등지에서 온 회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국에서 온 '장혜진'이라는 부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원래 대만에서 노방전도대원에 의해 오래전에 전도 되었고 현재는 중국 상해에 가서
사업을 한다고 했다. 아들과 딸은 현재 한국에서 고려대와 한남대를 다닌다고 하였다.
나는 장혜진씨에게 중국말로 질문을 하였는데 그녀는 한국말로 답변하려고 애썼다.
다른 외국사람도 한국말을 잘했다. 그들은 한글의 세계화에 공헌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치어걸 같은 율동
준비찬송을 부르는 동안에 무대 위와 2층 스탠드 밑에서는 치어걸 복장을한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율동으로 분위기를 흥겹게 했다. 남자 청년들은 박력
있는 태권도 폼새와 역동적인 동작으로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태권도복 같은 옷에는 천군(天軍)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시대의 조류를 타고 신세대가 좋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예술성이 뛰어나고
신바람을 일으켜야 좋아하는 우리 민족성과 잘 부합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에 소속을 '가정국'이라고 쓴 명찰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어 물어보니
선교회 회원들끼리 이곳에서 축복을 받은 가정이라고 하여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 가정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정확히는 모르겠고 2세가 10,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찬송을 할때는 무대 뿐만 아니라 전체가 율동을 하기도 한다. 모두가 잘 따라 하는데 신도 나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유일하게 어색한 표정으로 구경을 하고 있는 이는 나 하나 뿐인 것 같았다. 여기서 나는 완전 이방인이었다.
본부에 율동을 개발하는 전문가가 있고 평소 교회에서 다양한 율동 연습을 한다고 했다.
분위기를 뜨겁게 달군 목사들/신소리나, 정다운, 박천권, 정조은.
나는 이곳에 와서 여러모로 파격적인 모습을 보고 놀랐다. 처음으로 등단한 목사는 남자가 아닌
젊고 예쁜 여자 목사여서 깜짝 놀랐다. 목사까운이 아닌 색깔있는 세련된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나왔다.
신소리나, 정다운, 박천권, 정조은 등 부흥목사들은 모두 본명이 아니라 예명을 사용하는듯 했다.
신소리나 목사는 새로운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란 뜻일까! 청중을 압도하는 아름답고 큰 성악가 같은 음성으로
찬송을 리드하며 속옷뿐 아니라 겉옷까지 모두 흠뻑 젖도록 각오하고 힘차게 부르자고 선동(?)했다.
초등학교 어린이 세 명이 나와 꿈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 등을 간증하였다.
기성세대인 나는 어린이들의 평소 잠재의식이 저런 꿈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의 회원들은 모두 그 자체를 순수하게 받아드려 감동을 받는듯 했다.
열광적인 기도
"오늘 집회는 격려적 부흥회가 아니다. 순결한 신부 입장에서 곧 재림하실 주님을 영접하는 심정으로 힘차게 통성기도를 합시다.
두 팔을 벌리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큰 소리로 부릅시다."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변했다.
이 장면은 전국은 물론 세계 50개국으로 방송을 통해 중계된다고 하였다. 기도는 길지 않고 자주 하는 식이었다.
강북지역담당 정다운 목사는 "5월 16일 시작하여 전국을 돌고 오늘 마감하는 '천국성령운동'을 통하여 성령운동이
전세계로 무섭게 번져 나갈 것입니다. 은혜폭발, 성령폭발로 전세계를 확 바꾸어 놓읍시다."라고 호소했다.
정목사는 또 "예수님 모습 가운데 웃는 얼굴을 못봤다. 예수님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웃게 해드리자."고 했다.
이날 유일한 남자 부흥사인 박천권목사는 등단하여 관중석을 향해 한국식 큰절을 올렸다.
그는 우리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은 "행사장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좌정하고 계신다는 맘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영하 15도가 밑도는 추위에도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앉아계신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 것으로
믿고 큰 절을 드렸습니다. 낮은자리로 내려와서 마음을 비우고 큰 그릇을 준비하여 은혜를 받읍시다."라고 말했다.
대단한 부흥사 정조은 목사
이날 천국성령운동의 중심에는 정조은목사가 있었다. 그녀는 연약한 여인의 몸에서 어떻게 저런 열정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종일관 전광석같이 뜨거운 불을 품어 댔다. 다른 곳에서는 쉽사리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믿음과 사랑, 마음을 비울 것과 간구하는 신앙을 강조했다. 정목사가 설교를 끝낼 무렵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우루루 나아가서 순간 궁금하게 생각됐는데 그녀를 통해 안수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먹이를 취하려 바글바글 몰려드는 잉어떼와 같았다.
왼쪽 옆에 앉은 천안교회 정목사는 나에게 "정조은 목사님이 성령역사를 통해 신유의 은사로
많은 사람의 병이 나은 것이 소문이 나서 저렇게 벌떼처럼 몰려든답니다."라고 말했다.
정조은목사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고, 등은 온통 땀으로 젖어 겉옷까지 크게 얼룩져 있었다.
이날 스피치를한 목사들은 단 한사람도 정명석씨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전체적으로 서너 번 정도 '선생님'이란 대명사로 불리웠다.
그들은 찬송가와 복음성가 외에 자신들만의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중국사람이 갖고 있는 성가책 표지를 보니 '2009 新讚美歌'라고 되어 있었고,
한글로 된 가사 옆에 한자로 번역하여 풀이해 놓은 것이었다.
이날 가장 많이 부른 노래는 정명석씨가 옥중에서 지어 보내주었다는 '행복이란" 노래였다.
행복이란
사람들은 나를 보고 불행하다 하지만...
아니야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이사람을 보아도 저 사람을 보아도 행복은 아니야~
행복이란
영원히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야~
주님~~
난 행복하지요.
주님 말씀하시길
너는 행복을 알고 사는구나~
행복한 사람이야
기독교복음선교회 회원들은 정명석씨의 언행 일체가 예수님과 똑 같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회원들이 정명석씨를
예수님과 동일시 하는가 싶어 여러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한결같은 답변은 그게 절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건 내 말이다. 이건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전하는 말이다."라고 확실히 구별하여 말씀 하십니다..
요즈음은 옥중에서 메시지를 통해 "지금까지는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 전달하는 입장에서서 일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는 때가 되었으니 정성을 많이 드려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아무튼 그날 내가 그곳에서 만난사람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밝고 맑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직접 그들을 보지 않고 무조건 우매한자들의 집단, 또는 광신자라고 매도해서는 안될 것 같다.
나는 그곳에서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뜨거운 성령역사와 같은 장면을 목격하였다.
주님이 오시기를 그토록 갈구하는 그들의 기도와 소원대로 모두가 재림주를 만나 축복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집회가 끝난 시간은 밤 아홉시 경이었는데 그때까지 빈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토록 늦게 끝나는데도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순수하고 진실되고 열정적인 기도에 하나님이 꼭 응답해 주시길 기원하련다.
나는 정명석씨가 저질렀다는 범행이 다 거짓이라고 믿고 싶다.
나는 정명석씨에 대해 10년 징역을 언도한 재판이 잘 못된 판결이었으면 한다.
그가 저질렀다는 범행이 모두 사실이고 법정의 판결이 옳았다면
그 많은 성도들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기}
내가 이곳 저곳을 오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도 누구하나 제지하거나
왜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느냐고 규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촬영팀 외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모두가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경청할 뿐이었다.
# by | 2009/07/22 11:46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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